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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the 교회탐방기 Category
[허정갑의 예배탐방13]Atlanta Friends Meeting, Decatur, GA
February 8, 2009 by admin.
요한복음 15:15을 근거로 “친구회” 라고 불리우는 퀘이커 교회는 1647년도에 George Fox 에 의하여 영국에서 창시된 교단으로서 영국 성공회에 반대하여 시작되었다. 다른 개신교단과 마찬가지로 신대륙에 정착한 친구회는 William Penn의 종교자유주의 정책에 의하여 설립된 펜실베이니아 주에 거하며 발전되었다.
퀘이커 교도는 청교도의 한 분류로서 종교적 의식이나 교단적 신앙고백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진리를 탐구하는 기독교 교단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양식과 예식을 생략하고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여 예배드리기에 많은 궁금함을 안고 첫 예배에 참석하였다. 이들은 주일예배를 첫째 날 “Meeting” 즉 모임이라고 부른다. 아무 장식도, 성물 및 상징이 전혀 없이 중앙에 꽃을 얹은 작은 선반 하나를 놓고 서로 마주보는 팔각형으로 의자가 배열되어 있다.
이들은 신앙고백을 어느 하나의 신학적 바탕에서 하지 않고 종교적 체험을 삶에서 증언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회중 속에서 찾고자 노력한다. 이들에게는 신학적 신조보다는 사회적 신조로서 인류의 평등함과 정의 및 세계 평화에 대한 입장을 어느 교단보다 분명히 하고 있다. 일찍 도착하여 둘러보니 예배 전에 작지만 소그룹으로 성경공부 및 찬송 부르기 , 그리고 주일학교 성격의 모임들이 있었다.
10시가 되니 사람들이 모여 앉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약 120여명의 다른 인종들이 오직 침묵으로 1시간을 함께 한다. 예배의 시작을 알림도 없고 들어 온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묵상하든지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는데 헛기침의 소리만이 정막을 깰뿐 아무 특별한 진행이 없다.
친구회는 각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빛’을 존중하며 하나님 성령이 임하시는 각 개인의 증언을 기다리며 예배를 드린다. 이들에게는 목사나 장로가 없고 또한 만인제사장설에 근거하여 평신도라는 이름을 거부한다. 그러기에 예배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자기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을 피한다. 그런 시간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저 침묵에서 타인과 함께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릴 뿐이다. 대부분 눈을 감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정확히 10시 15분이 되니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자리를 비운다. 어디선가 그들만의 모임이 진행되리라. 남아있는 어른들은 계속하여 침묵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입구 쪽에 핸드폰을 꺼달라는 문구 외에는 아무런 표시나 장식이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머리위에 8개의 마이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회중 속에서 누군가 말을 시작할 때에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는 것을 고려한 것이리라 짐작한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자세도 다양한 것이 각자의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내 옆의 한 사람은 요가의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약 25분이 지나자 한 여인이 일어서 짧은 말을 전하는데 내용은 지난 주 결혼기념일을 맞아 새롭게 깨달은 점을 간단하게 나누었다. 또 5분이 지나자 한 여인이 일어나서 오바마 정부에서 초청한 어느 지방모임에 참석하여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한 모임의 내용을 보고하며 환경보호 및 생태계의 회복을 위하여 나눈 이야기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요사이 건강보험도 없이 견뎌야 하는 흔들리는 재정과 가정의 위기의식, 그리고 문을 닫아야하는 압박을 받는 병원, 학교 등의 심각성을 전하였다. 그러자 한 여인이 또 일어나서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구원하심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영적으로 병들어 있음을 상기시키며 미국이라는 부자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세계의 가난함을 잊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녀는 간증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성경을 인용하며 성령의 새로운 방향성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하였다.
이어진 침묵 후 어느 젊은 남자가 눈을 감은채로 전하였다. 이번 주가 찰스 다윈과 아브라함 링컨의 200년째 생일을 기념한다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두 사람의 공로를 치하하였다. 그리고 과학이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지 속에 같혀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입증하는 귀한 영역임을 감사드리었다. 이어서 젊은 여성이 일어나 이 자리에 참여하며 받은 축복을 감사하며 그동안 회중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고백하였다. 또 의사임을 밝히는 어느 남자가 일어나 직장에서 받는 도전을 전하며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50만 불의 거금을 들이며 3%성공확률의 수술에 투자하는 모습을 의사로서 말려야만 하는 갈등을 이야기 한다. 그러자 어느 여성이 일어나 우리 사회에 더 갖기를 그리고 내 것으로 소유하기를 위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결코 행복하지 못한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질책하며 공감을 이루었다.
예배의 진행순서는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하여 한 사람이 하나씩 이야기함으로 서로의 공감대를 이루어 나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마지막으로 지정된 한 사람이 외친다. 친구들이여! 병든 자들을 포함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하여 말하자고 하자 한 사람씩 기도제목들을 꺼내어 놓는다.
정확히 11시가 되자 서로 악수를 함으로서 모임은 끝나고 광고시간/방문자 소개/그리고 기쁨의 소식들을 나눈다. 여기에서 긴장된 기도시간의 흐름 속에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였던 말들이 서로 오고가며 첫 시간의 구별된 시간과 이제 나아가야 할 평범한 시간의 경계선에서 약 20분간 친교의 완충시간이 진행되었다. 이 시간에 새로 방문한 사람들의 인사시간인지라 이 동네에 이사 온지 1년이 되었으며 콜롬비아 신학대학원의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모임이 끝난 후 에모리대학교 켄들러 신학대학원의 존 스내리 교수가 인사를 한다.
잘 되었다 싶어 여러 가지 질문과 함께 더 자세한 배경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의 예배는 말이 조금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어떤 때는 아무 말도 없이 침묵 속에서 1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교회력 역시 지키지 않고 간혹 다른 교단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이곳을 찾아 잠시 쉬다가 돌아가곤 한다고 한다. 일찍이 남부에서의 인종차별 및 인권운동이 심각하게 진행될 때에도 퀘이커는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모든 인류의 존엄성을 주장하여 왔노라고 한다. 애틀랜타 퀘이커는 복음주의 성격에 입각은 다른 서부지역의 퀘이커 보다 더 진취적이고 자유주의에 속한다고 설명한 그는 이모임의 수가 비록 적다고 여기겠지만 퀘이커도는 본래 이것도 큰 모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며 더욱 적은 수의 소그룹을 지향한다고 한다.
퀘이커 공식 웹 사이트인 www.quaker.org에 의하면 전 세계 약40만 교도 중에 미국에만 약 10만이 있고 한국에는 12명이라고 한다. 맹자의 인성론에 근거한 성선설과 같이 인간의 근본적인 선함을 주장하는 친구회는 이렇게 이곳 지역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하여 조용한 모임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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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12]San Fernando Cathedral, TX
January 31, 2009 by admin.
이번 주말은 미국 남부 끝자락 멕시코와의 경계선 인근에 위치한 샌안토니오의 명물 산페르난도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저마다 제일 첫 번째 XX라고 주장하듯이 이 교회 또한 자랑이 1731년도에 세워진 미국의 가장 오래된 대성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1월 첫째 주 방문한 볼티모어 바실리카가 첫 번째 대성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웹 사이트에 들어가 자세히 읽어보니 볼티모어는 미국이 자유국가로서의 독립을 선언하고 1806-1821에 제일 처음에 건축한 건물이고 오늘 방문한 대성당은 미국이 독립하기 이 전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지를 통하여 1731년 콜로니알 시대에 세워진 정말 오래된 건물의 샌안토니오 대주교가 있는 대성당이다.
마침 장로교 교회교육자들의 연례행사인 APCE모임의 워크샵 강사로 초빙된지라 컨퍼런스 장소인 샌안토니오에서 하루를 더 연장하여 머무르면서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성페르난도 예배탐방을 하게 되었다.
이교회를 소개받게 된 것은 예일대학교의 종교음악연구소에 실린 비질리오 엘리잔도의 기사덕분이다.
엘리잔도는 일찍이 갈릴리신학(Mestizo)을 소개하며 미국신학교에 멕시코-미국인의 이중 언어 및 이중문화 신학을 정리하여 유명하여진 가톨릭 신학자로서 산페르난도 교회를 섬기며 그 성장과 함께 한 인물이다.
그는 타임지에서 여러 차례 미국을 이끄는 영적지도자로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노틀담 대학교의 히스패닉 신학 교수로 있다. 그의 리더십으로 라틴계의 크리스마스 의식인 라스 포사다스가 정착되었고 부활절에 예쁘게 장식된 달걀껍질과 채워진 내용물을 사람들의 머리위에서 부수며 기쁨을 나누는 멕시코 사람들의 의식인 “Cascarones“와 같은 여러 예배의식들이 개발되고 지켜온 교회로 미국뿐만이 아니라 남미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페르난도의 가장 잘 알려진 예배는 성금요일 15,000의 군중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수난 드라마 Passion Play일 것이다. 이 예배에는 예수를 대신하는 한 남성을 십자가에 직접 매어달아 성금요일의 십자가 사건을 교회 앞 광장에서 재현하며 많은 사람들을 십자가 구원사건의 현장으로 매년마다 안내하고 있다.
로마가톨릭은 주일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토요일 저녁미사를 주일 아침미사와 동일시하고 있다. 사전 정보에 따르면 토요일 저녁은 이중 언어로 드린다고 하기에 예배시작 1시간 전부터 교회에 도착하여 돌아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개인 기도를 드리며 미사 준비를 하고 있다.
약 200여명이 모인 예배는 가톨릭 규례를 따라 영어와 히스패닉 이중 언어로 인쇄된 순서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시작과 구약봉독은 영어로, 시편은 기타반주와 성가대가 인도하는 스페인어로, 서신서는 서반아, 복음서는 영어, 설교는 영어,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이중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Lectionary를 지키며 마가복음 1:21-28의 귀신들린 자의 병 고침을 짧은 설교로 약 7분 동안 전한다.
그리고 니케아 신조를 고백하는데 그 긴 문장을 신도들이 보지 않고 외워서 진행함이 새로웠다. 기도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 가면서 하고, 찬송은 독특한 멕시코 전통을 살려 마리아치 밴드와 성가대가 인도하는데 회중은 거의 소리 내지 않고 작게 따라 부르는 모습이다.
미사의 하이라이트인 성만찬은 사제들이 Wafer를 직접 먹여주던가 손에 쥐어주고 잔은 평신도리더가 들고 있으며 그 잔을 끌어당겨 직접 한 모금씩 마신다. 만약 잔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다시 채워오는데 사람이 없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잔을 더 이상 찾지 아니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성찬이 끝나고 두 번째 헌금으로 성찬헌금 바구니를 돌리는 것이 또한 이색적이다.
오늘이 평주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소문과 달리 예배가 특별히 준비된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성금요일과 같은 특별절기에 와야 그 진한 맛을 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제는 미사 마지막의 축도로서 회중에게 각자 가지고 온 기도 묵주 혹은 초 및 상징물들을 꺼내 들라고 부탁하고 상징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송축하고 믿음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회중사이를 돌면서 성수를 뿌려준다.
예배는 정확하게 1시간에 끝났다. 그런데 퇴장하면서 전혀 생소한 의식이 진행된다. 사제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두 개의 양초 밑 부분을 꼬아서 만든 처음 보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앞으로 줄서서 나오는 회중들의 양 어깨위에 올려놓고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기도를 하여 주는 것이다. 이 의식의 이름은 무엇일까? 아무 사전 설명 없이 진행되는 순식간의 일이라 이것 또한 멕시코 가톨릭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경건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날은 회중이 무릎으로 기어서 성전에 들어오는 날이 있지 않던가?
의식이 끝나고 물어보니 다음 주에 성인으로 기념하는 St. Blase의 목젖이 아프지 말라고 축도하는 가톨릭의 기도의식이다. 한 해 동안 감기를 비롯하여 아프지 말라고 목을 따뜻하게 하는 의미로 양초를 어깨위에 올려놓고 기도하여 주는데 불을 붙임을 생략함은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 후에 아픈 자들을 위하여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며 매우 따뜻하고 친근한 라틴의 정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시작부터 시청 앞을 지키고 있는 이 교회가 있기에 이 도심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교회 정문을 나서니 교회 앞 광장에서 연주회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인다. 그리고 교회 앞을 통과하여 샌안토니오의 도심지를 가로 지르는 물줄기가 서울 청계천의 물살과 같이 빠르게 흐르지는 않지만 초록색 빛을 띠고 배가 지나가기 적당한 수심으로 관광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이 곳에 성금요일 날 전국에서 성지순례로 모인 수많은 회중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선물가게에서 소개받은 연락처로 작년도 성금요일 예배실황 DVD를 주문하여야겠다. 이곳을 구별된 거룩한 장소로 만들어준 구별된 거룩한 시간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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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11]Ebenezer Baptist Church
January 25, 2009 by admin.
애틀랜타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를 꼽는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태어나고 목회한 에베네저 침례교회이다. 이곳은 킹 목사의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역사 깊은 교회로서 현재 본관은 1960년대의 모습으로 복구하고자 수리중이고 예배는 약 800명석의 신관에서 2부예배로 나뉘어 드린다. 오늘 참석한 11시 예배는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찬 모습이다.
예배의 처음은 엄숙하고도 전통적으로 시작하여 새로운 손님을 환영하는 시점에서는 축제의 절정인 강한 비트의 드럼반주에 맞추어 신바람 나게 춤을 춘다. 요사이 흑인교회는 축제의 분위기이다. 킹 목사의 서거 후 꼭 40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방문한 성빌립AME교회에서도 킹목사와 오바마 대통령을 연결시키며 흑인사회에서도 억눌린 여성의 지위를 부각시키는 뜻으로 담임목사가 아닌 여자 부목사가 설교를 하지 않았던가?
오늘 에베네저의 위치는 교회단지 옆이 모두 마틴 루터 킹목사의 인권운동을 기념하는 기념공원과 주차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킹목사가 배운 비폭력 인권운동의 영향을 간디에게 돌리기 위하여 입구에 간디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간디에게 영향을 준 기미년 3월1일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연결하여 주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기만 할 뿐이다.
오늘의 예배 전에 세례식이 있었음을 보며 이곳이 침례교회임을 확인한다. 본당 앞 가장 높은 곳에 침례탕이 있지 않은가? 또한 특별찬양을 어린이성가대가 담당하였는데 찬양이 있은 후 어른 성가대가 먼저 일어나서 그들의 자녀들을 격려하며 기립박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에 오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교회에서 아버지(Daddy King) 킹목사가 은퇴한 후 지난 30년을 4번째 담임목사로 섬기다 은퇴한 Joe Roberts 목사가 콜롬비아 설교학교수 및 프리칭센터 소장으로 금년 1월부터 시작하게 됨이다.
에베네저 교회는 애틀랜타에 위치한 흑인대학교들의 후원자역할을 하며 흑백간 분쟁의 소용돌이 속의 그 중심에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 흑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의 자리를 지켜왔으며 그 역사를 반영하듯 예배 또한 매우 정적이고 역동적이다. 회중의 참여 또한 적극적으로서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 소리에 자유로이 일어나 손을 흔들며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예배 찬송가로는 African American Heritage 찬송가를 사용하는데 이는 2001년 GIA에서 발행한 예배서이다. 같은 2001년도에 발행한 한영찬송가 Come Let Us Worship (Geneva, 2001)과는 다르게 회중찬송가로 잘 사용되는 흑인교회 찬송가인것 같다.
역사적 교회로 알려진 이곳, 이 장소 모두가 하나님의 안수로 기름부음 받은 곳임을 자부하는 주민과 회중들의 모습이다. “킹 목사만 암살당한 것이 아니라 킹 목사의 형인 Alfred Daniel 목사 또한 이듬 해 집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고 킹 목사의 어머니 또한 이 교회 주일 예배 도중에 성가대 반주를 하다 총에 맞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번 주에 취임한 오바마 흑인 대통령의 소식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승리의 복음인 것이다. (킹목사의 유일한 생존자 혈육인 81살의 누이가 쓴 자서전에서… Trough It All, by Christine King Farris, Atria Books, 2009.)
4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킹 목사가 멤피스 교회에서 전한 마지막 설교, 그리고 마지막 선포인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이 찬송가 가사의 말을 마치고 지친 듯이 자리에 앉은 킹 목사는 그 다음날 멤피스 어느 모텔에서 암살당한 것이다. 그러나 40년 후 모세의 40년 광야생활 후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하듯 오바마가 백인 미국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되는 축복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Rosa Park이라는 어느 한 흑인여성이 버스에 앉아서 자기자리의 권리를 주장하며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은 불씨가 버스 뒷좌석에서 앞좌석으로 옮겨지며 이제는 운전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버스의 향방을 결정짓는 흑인민족의 리더십과 모든 인종의 평등을 보여준 것이다. 남북 전쟁 중 미국전역에 퍼지게 된 이 찬송시는 “Truth is Marching On”을 외치며 “영광 영광 할렐루야, 진리는 승리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설교자는 오늘도 일터를 잃고, 재정의 혼란이 다가올지라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의 승리를 가져오며 자유와 평등의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고 있다. 침례교회의 전통대로 예배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리스도를 새로 영접하기를, 그리고 교회에 등록하는 신자의 삶으로 초청하는 시간을 두고 있다.
예배 후 킹 목사의 생가를 비롯하여 박물관, 그리고 주정부에서 관리하는
www.nps.gov./malu 시설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흑인들에게 거룩한 성지가 된 애틀랜타 에베네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킹 목사와 그의 부인의 유골이 소장된 기념비 앞에서 기념의 시간을 갖는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이 교회를 30년간 이끌어 온 은퇴목사이자 지금은 콜롬비아 신학대학원의 동료교수가 된 Joe Roberts 목사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같이 일하여야 할 많은 일들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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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10]미드웨이 장로교회
January 11, 2009 by admin.
1월 둘째주 주님의 세례주일인 오늘은 다문화/이중언어 예배를 찾아보았다.
미국장로교 다민종교회 웹사이트 www.pcusa.org/multicultural를 들어가면 2008년도 다민종교회 이야기 컨테스트의 우승교회가 5개 올라와 있다.
그중 하나는 마리에타의 베다니교회(최병호목사 담임) 이야기
www.pcusa.org/pcnews/2008/08527.htm이고
또 하나는 오늘 방문한 미드웨이 장로교회 이야기이다.
www.pcusa.org/multicultural/midway.htm
약 1년 전에 교회 문 닫기를 고려하던 회중이 지역의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받아드리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교회이다. 이 교회는 150여명이 착석할 수 있는 예배실에 약36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지붕을 고치기 위하여 5만 불이 필요함을 계기로 더 이상 무의미하게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기 보다는 지역주민과 함께 하기를 다짐하며 주로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과 예배드리기를 선포한 전통적 교회인 것이다.
예배실에 들어가니 NIV성경에 Worship & Rejoice (Hope, 2001)찬송가를 사용하고 동성연애자 반대그룹인 보수파 Layman Newspaper가 눈에 띈다. 여성이 목사인 이 교회는 평균연령이 고령인 75세이다.
오늘 예배에 다민종이 모여야 하는데 하필 버스가 고장이 나서 70여명의 이민자들과 어린이들을 실어 나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1시 예배에 다 모이면 첫 부분을 모두 함께하고 백인 담임목사의 어린이 설교가 있은 후 이주민들은 옆의 건물로 자리를 옮기어 영어배우기 성경공부 및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양쪽 회중이 모두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점심식사를 같이 한다고 한다.
필자가 목회하던 뉴저지 베다니교회가 생각이 난다. 베다니교회 또한 2006년도에 교단으로부터 다민종교회 상을 받은바 있다.
평균연령 75세로 주일예배 출석이 15명까지 줄면서 앞으로 5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확실 속에 한인2세 청장년들을 받아들여 같이 예배드리며 다문화/다민종 교회로 방향성을 새롭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옛날 생각이 더 나서 이 교회를 찾게 된 것 같다. 이번 주부터 2주 동안 목회학 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문화 예배를 다루어야 하는데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다음 주에 또 찾아와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이 예배를 직접 참관하고 수업을 통하여 배운 대로 조언을 한다면 어떤 모습이 나오겠는지…
먼저 흑인교회의 목사와 Pulpit Exchange를 비롯하여 여러 모습들의 다양한 예배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조심스러이 다가가야 할 이유는 새로이 부임한 목사의 개혁에 도움이 되어야지 어려움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기에… 그러나 여름 풀타임 인턴이 필요하다는 담임목사의 말에 올여름 애틀랜타에 올 연대학생중에서 한명을 소개하겠다고 약속을 하여 버렸다. 에모리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과정에 있는 젊은 부부가 이곳 이민자들이 사는 아파트단지에서 살며 이들을 섬기고 있기에 누가와도 많이 배울 수 있고 도전받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미 콜롬비아 신대원 학생 한명이 인턴으로 봉사하고 있기도 하다.
목사는 세례주일의 본문을 사용하며 이민자들 중에는 아직 세례받지 않은 비신자들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교회가 하여야 할 일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 아무래도 자주 들려야 할 것만 같은 예감을 안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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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9]발티모어 바실리카 대성당
January 11, 2009 by admin.
2009년 1월 첫주일 오늘은 가톨릭 대성당의 라틴어 미사를 기록한다.
매년 새해 첫 주말은 북미예전학회www.naal-liturgy.org가 모이는 기간이다. 약 700명의 예배학자 회원을 갖고 있는 이 모임 출석이 이번이 3번째이며 금년은 볼티모어에서 열리었는데 이번모임에 정식회원으로 입회를 허락받게 되었다. 학회 기간 중 주일예배 장소를 물색하다 미국에서 제일 첫째로 세워진 대성당Cathedral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는 교회를 찾게 되었다. 특별히 9시 예배는 라틴어 미사라고 하니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라틴어 미사는 1963년 제2바티칸공의회에서 금지되어 각 나라의 자국어로 예배드리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가 지금의 가톨릭을 본다면 종교개혁을 절대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지금의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발 빠르게 토착화와 교회갱신 및 복음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그 한 예로 바티칸공의회 이전은 회중을 뒤로하고 성만찬 집례를 하였는데 이제는 집례자가 회중을 마주 보고 한다. 처음에 라틴어 미사라고 할 때 1963년 이전의 라틴미사를 하겠다고 생각하였는데 방문한 대성당의 라틴어 미사는 이름만 라틴어 미사이지만 사제가 뒤를 보이지 않는 집례를 통하여 현대 가톨릭 예배갱신의 모습을 지키면서 언어만 라틴어를 사용하는 예배였다. 또한 예전전체가 라틴어가 아니라 말씀 봉독과 설교 그리고 광고는 영어로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자리에 참석한 라틴어를 모르는 회중들이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예배였다. 또한 모든 예배순서가 라틴어와 영어인 이중언어로 인쇄되어 있으며 교육적인 면에서 이른 아침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족단위로 미사에 참석한 여러 회중들을 볼 수 있었다.
Proper인 성서봉독은 영어로 하고 Ordinary인 통상문은 라틴어로 구성된 이중언어 예배의 모습에서 현대예배에서 다문화적 요소의 여러 가지의 적용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주부터 목회학 박사과정으로 이중언어/다문화 예배수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중심적인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방문한 교회이름이 명시하듯 바실리카형 건축물의 대성당은 3개의 Dome으로 구성된 교회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미지를 하나씩 담고 있으며 가운데 제일 큰 돔은 비둘기 성령의 이미지가 회중을 감싸고 있다.
카떼드랄Cathedral은 의자chair라는 뜻으로 교회 사이즈와 상관없이 주교의 의자가 있는 교회를 말한다. 비숍이 상주하고 있는 교회라는 뜻의 이 대성당은 주교보다 높은 대주교/Cardinal의 집례로 진행되었다.
나이가 많아 노쇠한 대주교는 오늘 본인의 시력이 좋지 않기에 젊은 사제가 도와 줄 것을 미리 광고하고 실제로 기도문을 사제가 대신 읽어주면 대주교가 크게 회치며 협력하는 집례의 모습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모습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흔히 혼자서 하는 일을 두 사람이 함께하며 진행하는 예배의 모습에서 서로 도와주며 협력하는 신앙의 고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이처럼 같이 기도하고 같이 성경을 봉독하며 도와주고 배려하는 다문화 예배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설교를 전한 젊은 사제는 오늘 주현절Epiphany예배의 특성을 소개하며 교회전통으로 이 날 부활절을 공포함을 설명하였다. 달력이 발달되지 않은 옛 날에 매년 다른 날짜에 지키는 부활절의 날짜를 이 날 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달력이 유통되지 않은 시대에 언제 사순절이 시작되고 부활절이 되는지 공포함으로서 새 해 첫날부터 부활절을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이고 부활의 신앙이 그 중심이 되는 신앙의 훈련을 가르친 것이다. 모든 주일이 작은 부활절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예전 전체를 노래로 집례하고 기도하는 라틴미사의 전통적인 모습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약식화된 예배에서 참여한 회중들이 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이 교회의 예배전통이 현대적 방향을 시도하는 교회들만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역사와 전통의 방법론으로 예배드리는 회중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이처럼 두 가지 언어가 제대로 섞인 예배를 자연스럽게 드리는 회중을 보며 한국어와 영어가 섞이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모두 열심히 참여하며 드리는 예배모습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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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8]송구영신예배
January 1, 2009 by admin.
허정갑목사 (콜롬비아 신학대학원 예배학교수 및 한미목회연구소KAM Director)의 예배탐방보고서
한국교회의 1년 중 가족이 함께하며 가장 거룩하고도 의미 있는 시간은 송구영신예배일 것이다. 연말과 연시를 교회의 온 식구가 함께 한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문화종교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지 연구 조사하여보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 정서로서는 새벽예배 즉 첫날 새 아침 이른 시간에 가장 귀하게 모은 정성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모습에 있는데 이 날 만큼은 새벽시간이 아닌 희랍문화권의 크로노스 즉 자정시간, 칼렌더의 날짜가 넘어가는 시간을 카운트 다운함을 보게 된다.
세상문화의 New Year’s Eve는 샴페인을 터트리는 파티의 시공간이지만 소수의 교회는 이를 거부하며 새로운 해를 포함하여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시간을 지키었다. 깨어 기도하는 모습을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세계교회는 오히려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속적인 시간이기에 오히려 상관하지 않고 방치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 둘루스에 위치한 연합장로교회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 위해 집에서 오고 가는 고속도로 위에 수많은 경찰차들이 과속위반과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있음을 보지 않았는가? 세상의 달력에 민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달력, 즉 교회력에 민감히 반응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은 2009년 새해 첫날이지만 성탄절 8번째 날이다. 바로 지난 주 같은 시간대에 디케이터 미국장로교회에서 드린 성탄전야예배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꼭 1주일 만에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예수님은 잊어버리고 세상 달력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에게 하루의 성탄일이 아니라 성탄절로서 하루예배 드리고 잊어버리는 날이 아니라 적어도 12일간을 예배하며 기뻐하는 절기가 될 수 없을까? 유대인들도 새해를 기념하는 날인 Rosh Hashana와 속죄의 날인 Yum Kippur의 사이에 10일간의 절기를 두고 계속 모이며 문화종교적인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하기에 송구 영신예배의 근원을 조사하면서 확인한 한인교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귀중한 시간임을 확인하면서 아쉽게도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아기예수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고 우리만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여 본다.
송구영신예배의 모체인 Watch Night예배의 근원은 1733년 모라비안의 창시자 진젠도프 백작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가 받아들여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 밤에 드리며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을 가지었다. 그러나 감리교회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미국 백인교회들은 이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 오직 이 날에 미국의 흑인교회들이 열심히 모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링컨 대통령이 약속한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이 시효 되기를 온 가족이 모여서 기다리며 드리던 예배에 있다고 한다. 사실 이들은 1863년 이전부터 Watch Night예배로 온 가족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예 장사꾼들이 사고 판 인간노예의 시효가 1월 1일을 기점으로 하였기에 그 다음날이면 울며 헤어질 수밖에 없는 흑인들은 전 날 밤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언제 다시 볼 수 없는 기약들을 서로 하는 날이었다.
우리의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구속사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에 응답하는 감사의 두 축으로 예배신학은 진행되는데 새해 첫날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의 기도와 찬양이 구원과 창조의 기쁨과 감사를 한국문화와 역사의 현장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모처럼 대학교 방학으로 돌아온 아들과 함께 5식구가 참석한 연합교회의 예배는 사회자 없는 열린음악회 식으로 진행된 축제와 기쁨의 시간이었다. 잘 준비된 순서와 함께하고자 하는 열정은 천여 명을 가득 채운 성전에 뜨거운 열기와 감동의 시간이었다. 이미 예배시작 10분전에 모든 자리가 가득 차 안내위원의 특별한 배려로 접는 의자를 갖고 무대 바로 밑 빈 공간에 자리하여 찬양팀의 발 스텝을 보면서 드린 오늘의 예배는 2009년을 시작하는 새로운 다짐과 감사의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보통 주일예배가 아닌 다양한 참여자가 함께 모여 드린 예배인 만큼 다양한 소리의 연출과 축제의 잔치 자리였다. 이 특별한 예배를 준비한 모든 손길과 마음에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전함은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민교회의 송구영신예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두 가지 예배 신학적 제안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하나는 성탄절과 주현절의 사이에 있는 정월 초하루의 시간이 교회력의 절기 속에서 지켜질 수는 없는가? 성탄절 후 길거리에 내다 버린 크리스마스 추리의 모습과 같이 잊혀진 예수님의 모습은 아닌가? 다름아닌 우리에게 다가오신 아기예수를 조금 더 길게 모시는 예배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성만찬이 함께 한다면 어떠할까? 물론 많은 인원수의 비좁은 장소, 그리고 시간적 제한이 있음을 알고 있다. 예배 후 준비된 떡국잔치와 연계하여 하늘나라의 친교, 즉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주님의 식탁으로의 초대를 그려본다. 이는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구원과 창조를 고백하며 감사하는 긴밀한 신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조용히 기다리는 기다림의 소리가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찬양하는 축제의 잔치소리와 함께 교창(antiphonal)하는 축복의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복된 한해가 되시길 바라며…
참고 인터넷 기사:
http://www.wsbrec.org/blackfacts/WatchNight.htm (미국 흑인교회의 송구영신예배)
http://www.wsbrec.org/blackfacts/WatchNight.htm (미국장로교의 송구영신예배 기사)
http://www.snopes.com/holidays/newyears/watchnight.asp (연합감리교회 송구영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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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7]Decatur First United Methodist Church
December 22, 2008 by admin.
오늘은 동지(Winter Solstice)로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는 햇빛이 가장 약하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서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며 추운 계절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파티를 갖는 날이다.
만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음과 양의 이론에서 유래된 이 날은 어둠과 차가움을 의미하는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때이지만 이 날을 시작으로 동지는 밝음과 따뜻함을 의미하는 양의 기운이 생성되는 변화의 기간이기도 하다.
한국은 동짓날이 되면 붉은 팥으로 죽을 끓여 먹는데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팥죽국물을 벽이나 문에 뿌리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시 열 번째 재앙을 피하여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을 유월절을 통하여 기념하과 같이 우리에게 속죄의 제물로 오신 어린양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이 때에 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두운 이 세상에 하늘의 빛을 전하러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장 밤이 깊은 동짓날을 전후로 지켜진다.
오늘 대림절 4번째 주일예배를 동네에 위치한 연합감리교회를 방문하였다. 약 800명석의 예배실은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시에 있는 2부 예배는 600여명이 모여 예배드리지만 오늘 출석한 8시45분 1부 예배는 7-80여명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 두 예배 모두 성가대가 인도하며 오르간이 반주하는 전통적인 예배이다.
이 교회에서 이번 9월서부터 새로운 예배 즉 Casual 예배를 시작하였는데 옛 건물인 독립 공간 채플에서 오전 8시30분 1부 예배와 같은 시간대에 예배를 드린다. 자주 지나가는 길에 위치한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의 모습인지라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들어가니 역시 300여석의 전통 공간 이었는데 20명의 어른과 10여명의 유치부 아이들이 젊은 찬양팀의 인도로 예배를 드린다.
물론 이 교회는 600여명이 출석하는 2부예배가 있는 건장한 교회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제공황에서도 내년 1년 예산으로 140만불을 헌금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회중이다. 그러기에 이 교회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목적이 이 글에 있음이 아님을 밝히며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1부 예배와 신설된 Casual예배의 제한된 인원수가 드리는 주일아침의 모습을 이야기하여 보고자 한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바로 예배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최고 인원의 10%만 모인 예배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썰렁하고 허전할 뿐이다. 이 때 예배의 모든 Pressure가 예배 인도자에게 쏠리며 공간의 빈자리가 예배를 압도하고 있음을 본다.
왜 좀 더 작은 공간에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는 예배를 기획하지 못할까? 어두침침한 동짓날 이른 아침시간에 유난히 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들어간 교회의 텅텅 비어있는 모습에서 새로 이곳을 찾은 방문자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예배의 내용이 없고 또한 언어와 문화가 아무리 생소할 지라도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그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전하여진다면 가장 감동 있는 예배현장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들은 없어도 강대상을 장식한 수백 개의 크리스마스 포인세티아 화분들이 눈에 다가온다. 이 화분들은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여 그 이름과 함께 주보에 올린 회중들의 기도 표시이다. 미국교회는 크리스마스에 화분 값을 미리헌금하며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주보에 실고 성탄절예배가 마친 후 화분들을 집에 가져가거나 몸이 불편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전달한다.
화분이 명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동짓날 새로운 희망과 빛이 시작되며 이 자리를 지키는 신실한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환상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Casual Service를 인도하는 부목사는 동정녀 마리아를 언급하며 열심히 설교를 전한다. 그는 특수설교의 장면을 설교 마지막 부분에 도입하는데 마리아로 분장한 한 여성이 설교 중에 촛불을 들고 조용히 들어와 강단의 촛불을 밝힌다. 회중의 한 여성이 같이 일어나 함께 서있는데 설교의 내용인 엘리자베스가 마리아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은 따분한 설교를 듣기만 하다가 그들 앞에 펼쳐지는 무언 드라마의 모습을 보면서 집중을 한다. 설교자가 설교를 마치자 마리아로 분장한 여성은 스크린에 투영된 회중의 기도를 인도한 후 촛불을 들고 조용히 퇴장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간단한 연출이다.
회중은 계속하여 찬양팀의 인도로 찬양하며 제단 앞으로 나와 기도하는데 어느 한 여성이 목회자와 긴 포옹을 하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 때 어린아이들이 다시 집중한다. 음성으로 전하여지지 못하는 거룩함과 아름다움의 모습이 자연스러이 선포되는 순간이다. 예배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표현함이 이처럼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전달하여 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이러한 일들이 예배에서 우리 앞에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동짓날의 추운 겨울, 텅 빈 교회에서의 예배인지라 더욱 애절하게 그 전환점을 찾게 된 것 같다. 바로 성탄절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삶의 전환점이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모습인 것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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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6]Decatur Presbyterian Church
December 9, 2008 by admin.
www.dpchurch.org
대림절 1번째 주일
애틀랜타에는 지역마다 살아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어서 좋다. 어디를 가나 활력 있는 예배와 교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남부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다. 디케이터 다운타운에 위치한 미국장로교회는 약 300명이 출석하는 교회이다. 유색인종이 별로 보이지 않는 백인중심의 교회로서 본당에 들어가자 환영인사를 담당하는 한 평신도가 반갑게 그리고 친절하게 대화를 시작한다. 오래전에 당회원이었지만 지금은 새로 오는 분들에게 교회안내를 맡으며 봉사한다고 한다. 예배 시작 전에 친절한 미소와 교인들 간에 서로의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 보좌에 가까이 다가가는 미국교회의 자연스런 모습이기도 하다.
본당에 들어가며 벽에 붙인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How Koreans are Reconverting the West by George Thompson Brown 이 그 내용이다.
http://www.howkoreansarereconvertingthewest.com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저자는 다름 아닌 콜롬비아 신학대학원 선교학 은퇴교수로서 한글이름은 부명광, 죽국 길림에서 태어나 광주와 목포를 중심으로 선교(1952-1973)하였고 미국에 돌아와서는 콜롬비아 신학강단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이 교회 교인이라고 한다.
아직 책을 읽어 보지는 못하였으나 한국교회가 미국사회에 주는 비중이 점점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실 예배 시작전에 알리는 광고에도 이번 주 화요일 오전에 한인교회인 연합교회(정인수목사)에서 노회가 있을 예정이니 화요일 성경공부가 없다고 알리지 않던가?
대림절 1번째 주일답게 예배시작의 부름을 한 가족이 리드하며 Wreath에 첫 번째 촛불을 밝히었다. 이는 소망Hope의 뜻을 가슴에 품고 성탄절을 준비함에 있다. 다음 주는 사랑Love, 3번째 대림절은 평화Peace, 그리고 4번째 주는 기쁨Joy를 다룰 것이다.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의 인도로 회중찬송을 하고 말씀으로 안내한다.
말씀을 봉독하기 전에 목회자는 성서적 배경을 설명하며 회중이 본문을 잘 듣도록 준비하여준다. 그런데 이 교회는 성서정과를 따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러기에 오늘의 본문을 계시록과 호세아에서 선택하고 있지 않는가? 사실 대림절에는 소선지서를 읽는 것이 전통이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순서를 바꾸어서 읽음으로 오늘의 설교는 구약본문에서 전하여짐을 준비시키고 있다. 설교자는 호세아의 헤세드와 대림절의 희망Hope을 잔잔하고 조용한 소망의 메시지로 안내한다. 또한 회중이 잘 보이는 곳에 작지만 HOPE의 메시지가 분명한 배너가 걸려있음으로 시청각 교육효과를 주고 있다.
언약의 상대편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여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의 모습이 헤세드이다. 북이스라엘왕국의 정치는 14년 동안 4명의 왕이 암살당한 상황에서 호세아 선지자의 사역이 두드러지는데 그는 고멜이라는 창녀를 부인으로 삼고 선지자는 그녀와 결혼하여 자녀를 다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자녀의 이름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관계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고 주석을 설명하며 강해하는 설교방식의 예배모습에서 한국장로교회와의 친근감을 발견하였다. 바알신과의 잘못된 관계성을 지적하며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회복을 전하는 호세아는 중동지방의 문화에서 엄청나게 파격적인 모습의 이야기, 즉 바람난 여인을 용서하고 집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설교자는 이제 몇 주 있으면 모두가 축하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교회의 모습을 회중에게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소망하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헤세드(hesed)를 의지하는 모습이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고 희망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대림절을 말하는 것이다.
설교 후 신앙고백의 순서는 매 주 같은 고백인 사도신경이 아닌 장로교 신앙고백서의 한 부분, 즉 소망에 해당되는 문장을 같이 고백하였다. 또한 뒤 이은 초청의 시간에는 방문자 기록과 기도제목을 적은 목록을 돌리고 곧 장 이어서 기도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목회자는 회중사이를 걸어 다니며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기도하는데 사이사이에 회중은 구도로 기도제목 혹은 기도대상을 이름하며 기도를 요청한다. 목회자는 성전 안을 걸으며 기도하는데 이 때 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깝게 들리는 그 다이내믹이 새롭게 전하여짐을 경험하였다.
잘 훈련된 성가대와 오르간의 조화 또한 소리의 밸런스를 이루어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고, 선포하고, 응답하고,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는 예배순서를 지향하는 신학이 분명한 교회이다. 전통적 개혁신앙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기도하고 축복을 선포하는 젊은 목회자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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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5]보스턴 Old South Church
November 24, 2008 by admin.
추수감사절 예배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혹독한 한 해를 보내며 감사의 잔치를 벌인 역사적인 사건의 추수감사주일예배를 오늘은 17세기에 세운 보스턴 시내의 오래된 교회이자 보스턴 마라톤의 종점지역으로 알려진 Old South Christ Church (United Church of Christ) 회중들과 드렸다. 교회본당은 Copley Square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번 주일은 감사절을 기념하여 이교회의 모체인 Old South Meeting House 에서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환영인사와 하버드 대학의 교목인 Peter Gomes목사의 설교로 진행되었다.
보스턴에 온 이유는 북미설교학회와 성서학회(SBL)가 이번 주말 보스턴 Convention Center에서 열리는지라 처음으로 참관하게 되었고 특별히 그랜트를 받게 된 Society of Art and Religion 회의에 참석차 오게 되었다. 금년부터 AAR학회가 SBL과 나뉘어져 모이기에 축소되어서 약 5,000여명이 모인다고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기독교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북적되는 1년 중 최고의 학회 잔치이다. 프린스턴에서 M.Div.를 같이 공부한 친구들을 새롭게 만나고 보니 훌쩍 지나간 20년의 시간이 되돌려진다.
예배가 드려진 Meeting House는 초기 보스턴 정착인들이 세운 교회이자, 시민회관, 시청, 및 법정의 역할을 감당하는 다목적 기능의 장소이다.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미국의 독립선언을 유발한 보스턴 Tea Party가 의논되고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미국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보스턴의 정서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찬송을 부르며 성서학회에 참석한 여러 교단의 신학자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예배가 준비되었다.
예배공간은 1729년도에 지어졌으며 1669년도에 Old South 교회 회중이 지은 목조 건물을 허물고 현재의 벽돌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독립이 되면서 미국의 가장 큰 모임장소로 사용되어지며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선포하는 중심적인 장소가 되었다.
영국교회의 압박을 거부하여 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의 후예들은 복잡한 성공회 예전을 거부하며 개인의 신앙과 하나님의 관계를 조명한 설교와 음악을 중심으로 한 기도, 성경, 그리고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회중이 시편찬송을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심플한 예배공간들을 창출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찬송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악보가 아닌 Shaped Note를 사용하여 노래하였는데 그 때 작곡된 노래들을 성가대가 예배 전에 노래하였고 청교도 신앙을 반영한 예배공간인지라 파이프 오르간이 없기에 브라스 5중주와 팀파니가 찬송반주를 맡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시대의 찬양들을 회중이 부를 기회가 없었음이다. 약 8년 전 북미 찬송가 공회 모임으로 이 장소에서 오랜 역사적 노래들을 회중 속에서 부르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악기 반주도 없이 4부 화성으로 노래하며 시간의 초월성을 경험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약 500여명의 좌석에 가득 찬 직4각형의 예배실은 그 둘레를 사각형의 Cubical 들이 있다. 이곳에 5-8명의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노예제도가 있던 콜로니얼 시대에는 흑인 노예들이 발코니에 앉아 있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30분 간격으로 각 가정이 가지고 온 화로의 석탄을 갈아 주었다고 한다. 가족은 1층 자리에 앉고 노예는 발코니 앉아 드리는 예배를 상상하여 보았고, 또한 수입하여 들여온 차에 부가된 엄청난 세금을 더 이상 낼 수 없음을 선언하기 위하여 모인 수많은 회중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그려 보았다. 이 좁은 곳에 약 3,000에서 5,000여명이 모여서 독립운동의 연설을 들었다고 하니 그 당시 그 열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오늘은 감사절, 그 기원을 찾아 이곳에 예배하러 왔기에 이 역사 깊은 교회가 지키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 예배와 그 배경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76년 6월 20일 매사추세츠 주 모임에서 새로운 땅의 안전한 정착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로 정하여 6월 29일 선포한 것이 그 유래의 가장 처음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777에서 1784년 사이에 새로이 조직된 의회를 통하여 감사절을 전국적으로 선포되었고 1789년 조오지 워싱톤을 시작으로 각 대통령들의 감사절 인사선포가 줄을 이었으며 그 중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감사절 선포가 그 대표적 연설이었다. 그의 영향력으로 1863년 감사절이 미국의 공식 공휴일로 채택된 것이다. 이 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그 후유증으로 나눠진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하며 서로 하나 될 것을 강조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서로 화해하여 떡을 떼고 나눌 것을 전쟁 후 상처와 아픔 속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기억하는 감사 중에 가장 큰 대감사인 성만찬 신학으로 볼 때에 한 해를 돌아보며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누는 식탁의 교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케 하시는 시간인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린 유서 깊은 교회의 정치적 힘을 발휘하듯 매사추세츠 주지사(그의 딸이 이곳 교인이라고 한다.)의 감사절 선포식을 거행하며 시작된 예배는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순서에서도 20살 미만의 자녀를 시작으로 40살 미만, 60살 미만, 100살 미만의 순서로 하나님 자녀들의 감사하는 고백의 선언을 선포하였다. 온 가족이 참석하여 감사절의 의미를 되풀이 하여 기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오늘 예배드린 이 교회 멤버 중에는 1706년에 세례를 받은 Benjamin Franklin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있다. 오늘 설교를 전한 Gomes 목사도 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의 유명인사로서 현재 하버드 대학의 교목으로 제직하고 있다.
그는 하박국 3:17-19을 봉독하였다,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함을 설교하며 어려운 이 시대에 감사하기를 기억하도록 그 특유의 억양과 문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는 흑인으로서 이 지역 Plymouth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자란 보스턴 특유의 본토인임을 자랑하며 본인이 대학생이었을 때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리고 이교회가 본 교회에서 나뉘어져 분리되던 과정의 역사를 예로 들며 아무것도 없을 때에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를 설교하였다.
감사절은 분명 교회력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는 2000년이 넘지만 감사절은 이제 겨우 300년이 조금 넘는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해석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곳마다 11월 3째 주일을 감사절 예배로 드리는 그 모습은 받은 은혜를 감사함에서 우리는 조물주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오늘의 만족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보스턴을 2주 만에 다시 와서 학회에 참석한 옛 친구 동료들과 같이 예배드리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간과 여비가 허락지 않아 휴일에 집에 오지 못하는 아들을 위로할 수는 없었지만 함께 예배하며 한 공동체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 예배를 마치고 에모리대학의 은퇴교수 단 샐리어스와 함께 공항으로 향하였다. (허정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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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의 예배탐방4]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November 17, 2008 by admin.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정인수목사의 리더십으로 성장한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는 미국장로교의 가장 큰 한인교회에 속한다. 정 목사는 4년 전『교회를 혁신하는 목회 리더십』이라는 변화를 주저하는 기성교회에서의 목회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을 낸 후 3배 이상의 교회 성장을 이루어 내 3천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의 영적 성장이 됐다. 그리고 다시 2008년『영혼을 혁신하는 목회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책을 두란노에서 냈다.
정 목사는 “어떤 추상적인 목회이론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과 발로 쓴, 검증된 목회이야기”라고 책을 소개한다. 왜 성도들은 변하지 않을까? 왜 어려움에 처하면 목회자는 감정의 먹구름 속에서 십자가를 보지 못하곤 할까? 그것은 말만 변했지 영혼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혼의 혁신을 통해 진정한 교회혁신의 리더로 갈수 있다고 말하는 정 목사는 “영혼을 변화하지 않고는 결코 변화의 리더십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변화의 시대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교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예배현장을 찾아보았다. 연합교회 예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차례 설교도 전한 바 있고 애틀랜타에 이주한 이후로 예배자로서 가족이 같이 등록하여 출석하는 모교회이다. 4번의 주일예배가 있는데 이 중 3부예배를 가게 되는 것은 아이들이 선택한 우리말 주일학교가 동시간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적인 성가대가 있는 2부예배에 제일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고 교회 지도자들과 어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와이프는 찬양팀이 이끄는 3부 예배를 지향하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맞출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다.
목사로서 신학교교수의 직책은 주일예배 시에 여러 교회를 다닐 수 있게 하여 주지만 그 가족은 같이 할 수 없기에 한 가족의 신앙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하기에 비록 주일예배만 출석하지만 나의 가족이 교인으로 생각하는 연합교회를 향하여 오랜만에 온 가족이 자동차에 몸을 실고 40여분의 드라이브를 하였다.
오늘도 3부예배에 임하니 찬양팀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좋은 음향도구와 최고의 시설 및 연주자로 구성되어 역동성 있는 리더십으로 순식간에 회중을 사로잡고 주님의 존귀를 찬양하게 하는 팀이다. 가장 감사한 것은 가사의 글자만 스크린에 띄우지 않고 단선율 악보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이는 찬송의 4마디를 2줄에 나누어서 계속 악보를 바꾸어가며 보여주는데 음악을 읽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음이다. 특별히 새 찬송을 소개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찬양팀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생각이다. 좋은 시스템을 사용하는 찬양팀의 가장 큰 취약점은 바로 회중의 소리가 들리지 않음에 있다. 성가대와 찬양팀의 사명은 무엇인가? 바로 회중의 찬양을 돕기 위한 것이다. 회중의 찬양을 대신 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덮어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점점 커지는 찬양팀의 소리에 옆 사람의 소리는 고사하고 내 목소리도 들리질 않으니 찬송이 주는 상징적 요소인 온 회중이 연합하여 한 목소리로 찬양함이 아닌 확성된 찬양팀의 소리에 이끌린 만들어진 소리에 따라가는 수동적 예배자가 됨을 경험한다.
그나마 잘 아는 찬송에는 힘이 실리지만 그렇지 않은 새로운 곡에는 따라가기를 아예 포기하고 가만히 듣기만 하는 여러 회중을 발견한다. 그러다 보니 인도자는 계속하여 요구의 강도를 더욱 높여간다. 두 손을 드세요… 영광의 박수를… 일어나서 찬양합시다… 사람들과 인사를 시키며 적어도 4사람과 하라는 등 주문이 끊이질 않는다. 과연 회중의 자율성을 위한 장기적인 준비와 교육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리의 웅장함에 파묻혀 심취해 있는 사람들과 아예 목소리를 잃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의 엇갈린 박자와 얼굴에서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만 모두 한 마음으로 찬양에 임할 수 있음을 감지한다. 사실 800석 본당 전체에 깔려있는 카펫이 치명적이긴 하다. 회중의 소리는 죽어있고 인도자의 소리만 확성된 공간의 구조가 예배의 구조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천장과 스며드는 자연채광의 12각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성전의 자연스러운 음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못함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서울 명성교회와 온누리교회 모델의 중간모습을 띄고 있는 연합교회 예배는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분명한 듯 보이나 중간에 위치한 평신도 지도자들의 참여는 분명치 않음을 보게 된다. 찬양이 마지막 20분에 이르러서는 정 목사가 직접 단에 올라가 찬양인도자가 되어 찬양 사이사이에 멘트를 던지며 회중을 이끌어간다. 찬양팀에 대한 담임목사의 확고한 의지와 예배를 이끄는 담임목사의 카리스마가 확인되는 시간이다.
찬양이 끝남과 함께 대표기도자가 단 위에 올라서서 기도를 드린다. 감사의 기도를 시작으로, 경제의 어려움, 자녀들을 위하여,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회복, 연합교회와 교역자들을 위하여, 말씀을 위하여, 그리고 찬양을 위하여 기도를 마친 후에 정 목사의 환영의 인사 및 광고의 시간이 이어진다.
여기서도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하도록 하는 즉흥적인 요청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는 회중들로 하여금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공동체의 역사적 인사가 아닌 한 개인의 주관적 요구가 나의 것으로 받아드려지기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되풀이되는 반복의 훈련이 요구되는데 매 주 바뀌는 멘트의 방법론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중요성이 약화됨을 본다. 그러나 다음 주 3,000명 전교인의 추수감사 식사준비를 위한 광고내용은 의미심장하게 들려온다.
모두 4번 같은 설교를 하는 오늘의 말씀은 아프리카 선교보고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못된 짓을 하던 강신무당에서 목회자로 변화한 어느 케냐인의 이야기, 그리고 끊임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난 주 방문한 이디오피아 및 케냐선교지를 통하여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아픔만 보는 눈을 돌려 더 절실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아프리카의 가난을 볼 수 있도록 설교자는 호소하고 있다.
설교를 비롯하여 예배시간 내내 그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회중의 모습에서 이들이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존재를 기뻐할 수 있는 참여의 방법들이 절심함을 깨닫는다. 대형 강의실(단지 학교와 달리 예배에서는 찬송과 헌금이 드려짐)과 같은 우리 예배실의 모습에서 오늘 설교의 주제인 피선교지인 아프리카 교회를 생각하여 보았다. 시설과 자료가 형편없이 부족하기만한 그곳에서의 예배는 온 회중이 몸으로 그리고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열정이 우리가 더 배워야 할 참예배자의 절대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복음의 인생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의 모습이라고 정 목사는 설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잊고 경제의 어려움속에 상대적인 빈곤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설교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설교에서 서로 나누라는 하나님 말씀의 모습과 같이 예배의 모습도 서로 나눔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찬양 또한 연주자의 독무대가 아닌 회중과 함께하는 모습이 될 수는 없는가? 회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배려하고 격려하며 같이 만들어가는 모습은 무엇일까?
설교후 헌신과 결단의 기도로 초청하며 은혜의 찬송으로 이어지면서 예배가 끝나고 있다. 그러나 회중이 기도할 수 있게 하는 찬양이 없었음이 아쉽게 남아있다. 강한 리듬과 소리로 귀를 때리는 역동성은 있었지만 가슴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찬양팀의 고백적인 모습이 아쉽다. 인도자들의 대화적인 리더십이 예배하는 모습을 통하여 반영되길 바랄 뿐이다.
전체적으로 선교의 비전을 세워주는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이었다.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아쉬운 것은 아프리카 선교지에 우리가 주는 것만 있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워 온 그들의 찬양을 함께 불러보면서 하나 된 그리스도인의 고백을 함께 하여봄이 어떠할까? 선교현장의 사진만이 아닌 그들의 찬양소리를 듣고 싶다.
연합교회에는 매 주 반복되는 찬송, 문구, 내용들이 있다. “주님 다시오실때까지” 마지막 찬송을 비롯한 예배인도자들이 예배 때마다 확인하고픈 연합교회만의 정서가 있을 것이다. 과연 회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그 초청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론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엔 2부예배 혹은 영어예배에 참석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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