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M Newsletter 6호, 2008년 4월


4월 1일 새 기숙사 기공식에서 공연한 상모춤

인사의 글

여러분의 교회와 가정에 평안을 기도드리며,

허정갑 목사

Rev. Paul Junggap Huh, Ph.D.
Assistant Professor of Worship and Director of Korean-American Ministries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성서정과 5월(A) 설교자료

*현재「목회와 신학」별지부록「그 말씀」에 연재중인 허정갑교수의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매달 뉴스레터와 함께 제공합니다. 성서정과(Lectionary)를 따르는 예배와 설교를 준비하시는 교회와 목회자 분들을 위하여 설교본문안내를 합니다. 본문에 대한 예배자로와 참고문헌은 www.textweek.com을 참고하세요.

다문화권의 하나님

5월 4일: 부활절 7번째 주일 (어린이주일)

행1:6-14; 시68:1-10, 32-35; 밷전4:12-14, 5:6-11; 요17:1-11

예수님의 승천을 기리는 주일로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사건을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서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다시 오시기를 약속하시며 하늘로 오르신다. 승천일이 목요일에 이루어짐은 부활 후 40일째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승천일을 지키지 않기에 부활절 7번째 주일을 주님의 승천을 기억하며 본문을 생각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하늘로 올리워 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사렛예수의 승천은 이 땅으로 해석할 수 없는 신비를 안고 있다. 목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그가 이제는 하늘로 오르사 창조주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시110:1). 그는 창조주와 함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신다(마28:18). 승천과 창조의 신비는 세상의 눈높이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인지라 일상생활에 분주한 우리의 작은 견해로서 이 큰 그림이 상상이 가지 않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우리의 작은 문제들에 눈이 가려져 땅만 보고 살지 감히 위를 올려보지 못하는 답답함에 있음을 말한다.

승천에 대한 교리는 5월의 화창하고도 푸릇푸릇한 봄 날씨와는 거리가 먼 두려움과 경외로움이 가득한 종말론의 모습이다. 이는 가장 어둡고 심각한 마지막 날에 대한 신앙이며 믿음인 것이다.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시며, 그의 백성들에게 버림받으신 그 분께서 올라가신 사건이다. 그는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인 것이다. 우리에게 교회를 맞기시고 그의 몸을 허락하시며 그의 백성을 부탁하시었다. 이제 그만 하늘을 쳐다보고 세상을 바로 볼 줄 알아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지 또 신문에 어떤 기사가 그 머리를 장식하든지 상관없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여야 한다. 하늘과 땅 온 세상이 그의 손에 달려있음이다.

특별히 이날은 어린이주일로서 예배 후 어린이들과 함께 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이벤트를 준비하여 승천주일과 연결하여 봄도 바람직하다.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1:11).

5월 11일: 성령강림주일 (어버이주일)

행2:1-21; 시104:24-34, 35b; 고전12:3b-13; 요20:19-23

하나님은 다문화권에 거하신다. 성령의 강림은 우리 사회의 이웃사촌,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외국인 유학생, 일반 외국인, 및 탈북자를 포함한 모든 백성에게 임하심이다. 본문이 소개하는 새로이 만들어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한 자리에 모여 오순절잔치를 맞이한다. 이는 히브리어 “shevuot”으로서 주간이라는 뜻으로 유월절이 지난 7번째 주간 약 50일째를 말한다.

농경 문화권에서는 보리나 밀, 첫 소출을 축하하는 잔치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됨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였고 또한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전하여 받음을 기념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하나님의 선물을 다양한 모습으로 나누게 된 이 날 성령의 선물이 기독교 공동체에게 주어진다. 불과 바람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성령은 서로가 받은 선물을 나누는 간증의 시간을 안내한다.

신앙인으로서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들과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오순절 날 각 지역에서부터 한곳에 모인 유대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결코 서로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서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나눔의 기적을 맛보게 된다.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세대간의 차이와 문화, 음악, 그리고 언어 등을 생각하여 볼 때 그동안 우리를 갈라놓았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음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는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더군다나 평범한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함은 더욱 엄청난 기적인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높여 이야기 함이란 엄청난 용기를 요구한다. 더군다나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함이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임하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있는 곳 어디에서든지 남녀노소 및 빈부귀천 구분 없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의 소식을 말함이다.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사 누구든지 말씀을 증거하고 외치는 잔치의 주일이 오순절인 것이다.

성령이여 오시사 우리의 입을 여시고 막힌 말문을 트게 하사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담대함으로 주님을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또한 어버이 주일로서 하나님 어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버이 하나님께서는 다문화권에 속한 그의 자식들을 보시기에 모두 똑같이 사랑하시지 않을까? 유대교와 기독교 오순절의 다양한 의미들이 오늘 어버이 주일과 다시 한 번 접목됨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선물로 주신 성령의 역사를 조명하는 권능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5월 18일: 삼위 일체 주일

창1:1-2:4a; 시8; 고후13:11-13; 마28:16-20

성경은 인간들과 대화하려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모습을 기록한 구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다른 방향을 선택하며, 우상을 섬기고, 주님과의 대화를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우리를 찾으신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 선지자들, 그리고 율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구원의 비밀을 펼치신다. 십자가 형벌이라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나시며 부활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신다. 계속하여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초록색의 기간인 평주일의 시작이 여기에 있다.

이제는 긴 50일 여정의 부활절 기간도 지났지만 다시 한 번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주님은 지정된 어느 장소나 시간에 매이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인시키신다. 무소불능의 하나님(욥42:2)이시다. 마르틴 루터는 일찍이 하나님의 “유비쿼터스”를 주장하며 언제 어디든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였다. 유비쿼터스는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웍에 접속하는 현대적 컴퓨팅 용어가 아닌 신학적 용어이기도 하다. 어거스틴 또한 하나님의 충만하고도 풍부한 “plentitude”를 이야기하며 예를 들어 두 세가지 종류의 꽃만 창조하심이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자의 꽃 종류를 창조하심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멈춤이 없이 영원하며 차고 넘치는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말한다.

하나님은 다문화권에 거하신다. 복음서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4개임을 볼 때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증거하는 다양한 시각을 확인한다. 누군가 마태복음만을 주장하며 다른 복음서가 필요치 않다고 할 때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기 위하여서는 적어도 4개의 복음서가 필요하다고 반박한 교부 이레니우스의 가르침이 성서의 정경을 이룬 것이다. 하나님의 다문화는 삼위일체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삼위일체신학은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저 멀리계신 개념의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 아들, 성령의 가족관계를 이룬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심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와 자녀 및 부부역할만 강조함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을 조명함과 같이 삼위일체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관계성을 상고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 또한 우리는 닮아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이루시고 하나 됨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가족처럼 돌보는 목회의 현장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께 끊임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지속적인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성령 하나님 또한 서로의 관계를 교통하심과 도우심이 긴밀하다. 여기에 사랑, 사랑하는 자, 그리고 사랑받는 자가 하나 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5월 25일: 8번째 평주일

사49:8-16a; 시131; 고전4:1-5; 마6:24-34

삼위일체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가 평주일의 시간 속에 이어지며 마태는 재물에 관한 가르침을 전개한다. 재물의 아람어는 ‘맘몬’이다. 그 자체에 부정적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만능주의에 속한 현대사회에서 재물은 우상과 같은 해석으로 다루어짐이 본문에 나타난 ‘재물’의 위치이다. 소비자 문화권에서는 물건이 없어지기 전에, 혹은 다른 사람이 갖기 전에 무언가 지녀야하고 갖추어야하는 압박감으로 매출을 부추기며 많이 가진 자가 축복받은 자로 여기는 현대사회에 본문은 하나님과 맘몬을 구분하는 지혜를 소개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대하여 지나친 관심과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빌4:6)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며 염려하는 모습을 깨우치며 아무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시사하는 본문을 통하여 설교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다른 다문화적 시각을 안내할 수 있다.

먼저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시각으로 새와 꽃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각시킬 수 있다. 좀 더 많이 가진 자는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누고, 없는 자는 염려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고 전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가난 속에 태어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새와 꽃과는 비교가 안 되게 귀중함을 확인시킨다.

둘째로 생태학적 입장에서 서로 존중하여야 하는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더럽혀지는 자연의 파괴를 심각히 생각하여 생명체간에 서로 연결된 관계성을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새와 꽃들의 자연세계를 인간들의 욕심으로 더럽히고 망쳐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제대로 알게 될 때에 비로서 인간들은 욕심을 저버리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감사의 잔치를 안내하는 시각이다. 들의 풀과 백합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심과 같이(32절)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난한 자들의 심정을 돌아보고 자연을 지키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가꾸는 청지기의 사명을 말한다. 진정한 안식은 그 마음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그날에 족함을 마음껏 누리는 일이다. 6일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7일째 안식을 취하시며 만족하시었다. 더 이상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 완성된 창조의 모습을 마음껏 누리시었다. 더 이상 할 일이 필요치 않은 이유는 그 창조가 완벽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생활도 진정한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오늘의 일을 열심히 하여 만족한 삶을 누리고 감사의 잔치를 벌이며 내일 일은 염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하루를 생활하였기에 더 이상 후회가 없는 만족과 감사의 모습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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